2021.9.12 바람없고 무더움
경북 구미 금오산 (고려 말 길재 야은 은둔생활 기려… 조선 영조가 건립한 명승 52호)
금오산 제2공영주차장 (주차료\1.500원) ~다혜문~도선굴~마애여래입상~약사암~금오산 현월봉~칼다봉
~채미정---------------- ------------------------------------------------11.96Km(8시간48분)
금오산 제2공영주차장 (주차료\1.500원) 8시30분 산행 시작
꽃무릇이 덤성덤성하게 핀게 한창이었다
1970년에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박정희 대통령이 생전 금오산에서 자연보호운동을 주창했다.
1978년 자연보호헌장을 제정 선포했다. 따라서 금오산이 자연보호헌장 발상지로 알려져, 자연경관도 어느 산보다 뛰어나다. 1983년엔 자연학습원을 개원, 지금에 이른다. ----------------퍼옴
멀지않는 길이다
정상까지는 경사도는 있지만 도립공원 답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있고 볼거리도 많아 기대가 된다.
케이블카도
첫걸음부터 본 돌탑이 크게 또는 작게 온 산에 산재 해 있었다 .
금오산성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되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금오산성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고려 말에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켰으며,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을 두었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공사가 시행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퍼옴
다혜문
영흥정
신라 도선이 창건한 해운사(海雲寺)
대웅전은 금색칠이 화려했는데 날리지않고 아름다웠다
도선굴 가는 길은 아찔했다. 그러나 굵은 쇠사슬로 꼰 지지대와 철책이 야무지게 설치되어 안정감을 주었다.
신라 말 도참설과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인 도선굴은 규모 주변 경관 위치까지도 대단했다 .
대혜폭포[大惠瀑布
명금폭포(鳴金瀑布)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고 새겨진 27m 높이의 폭포이며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 고 하여 명금폭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할딱봉 바위에서 내려보는 채미정과 금오지 너머 구미 시내 조망이 일품이다.
쑥부쟁이 진범 이 이제 갓 피어 넘 예뻤다 .
투구, 모싯대, 물레나물, 물봉선화도 ...........................야생화의 종류도 개체수도 많았다
오형석탑 가는 길
오형석탑
할아버지 보다 먼저 하늘나라 간 손주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돌탑을 쌓았고 이름의 유래는 금오산의 '오'자와 손주의 이름에 '형'자를 따서 오형돌탑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쌍용문
이문을 통과 해 마애여래입상 가기
보물 제 490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가는 길
금오산 정상 아래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각된 보물 제490호 마애여래입상.
암벽 모서리를 이용해 불상을 좌우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각했다는 점이 더욱 독특하게 보이고 신비하기까지 했다. 고려시대 제작됐다지만 아직 선명하게 보존돼 있다. 손모양이랑 귀모양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고 ................신기하고 재밌게 볼수있었다
대단한 바위군 아래의 석간수 용궁
뿌리를 뒤집고 사는 나무
가는 길에서 만난 석간수
막 핀 투구가 초가을 지리를 생각하게 한다
유명세를 탄 구미 금오산 약사암
약사암에서 본 금오산 현월봉 아래 전망대
이 범종엔 박정희대통령 일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약사봉(958m)의 아슬아슬하게 깎아지른 암벽 아래 지어진 약사전과 범종각은 돋보이는 금오산의 천하절경이다
범종각은 현수교로 연결돼 있고 기암절벽이 가세한 아름다움에 감탄 또 감탄
동국제일문
금오산 2개의 현월봉
달이 매달려 있다’는 현월봉(懸月峰) 옛 정상석
금오산(金烏山) 황금빛 까마귀(금오)가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상석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선 사람들, 나는 .................
헬기장 -----------이렇게 거대한 헬기장은 처음 봐
약사암을 멋지게 볼 수 있는 곳
성안 칼다봉으로
금오산성 중수 송공비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수송공비가 성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퍼옴
성안의 성터
금오산성 성곽길 따라
칼다봉 가는 길에서 금오산 현월봉이랑 조망
칼다봉 능선길
칼다봉 가는 능선에도 가파른 철계단이 많았다
금오관광 호텔로 그리고 채미정으로
충절의 상징’ 채미정 품은 금오산
고려가 망하자 고향에 낙향해 금오산에 은거했던 야은 길재.
조선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선생의 대쪽같은 향기가 묻어나는 채미정의 바윗돌에 새겨진 회고가를 읍조려 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를 배신하지 않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충절을 지킨 야은 길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채미정. 명승 제52호. 채미정은 멀리 바라보이는 금오산과 채미정 전면의 맑은 계류와 수목들이 채미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경관미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실제 길재는 조선에서 태상박사의 관직을 받았으나 고사하고 고향 선산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며 절의를 지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과 불충과 불의를 조장하고 가르치는 현대에 더욱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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